전체 글 23

[유예] 두 사람의 밤

밭은 숨결이 잇새로 새어 나왔다. 누가 보아도 위독할 만큼 핏자국을 흘려대는 사내는 긴장감을 늦추지 못하고 있었다. 선득한 핏자국이 바닥에 흩어져 있었다. 그를 따라온 궤적은 지독할 만큼 그를 따라다니고는 했다. 갈수록 지쳤는지 핏자국의 간격은 점점 좁아지고 흐드러지게 뭉텅이로 피어 있다. 웅덩이가 되지 않는 것이 다행이라 할 만큼 안쓰러워 보이는 혈흔이 두렵게 따라다니고, 순사라는 이름의 승냥이 떼가 몰려 들지 않도록 숨을 숨기고 있었지만 오늘따라 키가 크고 날렵한 자신의 몸은 발가벗겨진 것처럼 느껴졌다.‘조금만, 더 가면…….’조금만. 그 한마디로 자신을 속이면서 어떻게든 피했다. 복면을 쓰고 있어 숨도 제대로 내쉴 수 없지만 그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탈 듯한 갈망과 함께 갈증이 올라왔다. 이렇게 피..

카테고리 없음 2025.09.20

[유예] 성별 반전 if

예달은 일어나자마자 느껴지는 기묘한 것에 자신의 성별을 깨달았다. 꿈인가 싶었는데 정말로 성별이 바뀌어 버렸다. 화들짝 놀란 그녀, 아니, 그가 제대로 옷도 갖추어 입지 않고 후다닥 뛰쳐 나갔다. 남자가 된다고 해서 말괄량이 같은 성격이 고쳐지지는 않았다.“도련님! 도련니임!”거실로 발을 구르면서 뛰쳐나가자 가운을 대충 걸치고 있는 여인이 보였다. 가슴팍을 훤히 드러내고 기다랗고 탐스러운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모습이 조금 자극적이었다. 예달은 얼굴을 붉히며 그 여인이 들고 있는 커피 향기를 맡았다. 혹시……? “도련님이라니. 아가씨라고 해야지, 예달 군.”“아…….”커피를 한 모금 들이켜면서 보이는 미소가 선우진의 것과 너무도 닮았다. 그러고 보니 머리카락도, 여자치고는 큰 키도, 늘씬하게 뻗은 다리도 선..

카테고리 없음 2025.09.20

[유예] 영혼 체인지

아침 일찍 일어난 예달에게는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하나씩 있다. 좋은 소식은 짝사랑하던 도련님을 드디어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고, 나쁜 소식은 가지게 된 나머지 자신이 도련님의 몸에 들어와 버린 것이다. ‘세상에…….’ 자신의 몸에는 아마도 사이온지 도련님이 들어가 있을 거라 생각하니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 왔지만, 일단 가장 문제인 건 자신이 도련님의 몸에 들어왔다는 것이겠지. 그는 하는 일이 많다. 사업도 많이 하고 있는 데다가 늘 교류하는 귀족도 있다. 그런데 자신은 그런 그의 사정을 소상하게 모른다. 즉, 대역을 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뜻이다. 생전 아플 일이 없어 보이는 튼튼한 도련님이라 아프다고 거짓말을 하는 것도 양심에 찔렸지만, 자신이 나가서 마음대로 날뛰어 폐를 끼치는 건 더욱 양심에 걸리..

카테고리 없음 2025.09.20

[유예] 눈치와 사랑의 상관 관계

마당을 청소하던 예달은 현관 바닥에 들어온 편지를 읽었다. 편지라고 하기에는 쪽지에 가벼웠지만 말이다. 예달은 천천히 글자를 읽어나갔다. 귀여운 당신의 얼굴이 좋소, 뺨의 홍조는 벚꽃을 닮았으며 당신의 미소가 만개하는 것을 내가 매우 좋아합니다. 당신과 뜨거운 밤을 보내고 싶소. 부디 내 맘을 알아주시오. 주시오, 마지막 문장까지 곱씹으며 읽던 예달은 몸에 소름이 끼쳤다. 우리 도련님에게 이런 일이.... 홀로 중얼거리며 말이다. 근래에 도련님과 외출을 나갈 때면 이질적인 시선이나 누군가의 의도적인 움직임이 느껴지곤 했는데 그저 자신이 예민한 탓이라고 마음을 놓았던 과거의 본인을 떠올리고는 예달은 가슴이 쿵, 소리를 내며 가라앉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투박한 글씨체를 보아하니 남자 같은데, 우리 도련님을..

카테고리 없음 2025.09.20

[유예] 언-럭키 데이즈

선우진은 근래 들어 새로운 고민이 생겼다. 고민이 발발한 것은 사흘 전이고, 고민의 원인이 생긴 지는 어언 열흘 가까이 지났다. 바로, 의도하지 않게 자꾸만 메이드의 속살을 보게 된다는 것. 무슨 저주에 걸리기라도 한 건지 보름 전 까지는 이만큼 자주 마주치지도 않던 예달과 한 시간에 몇 번이나 마주치는 것으로도 모자라 이제는 볼 때 마다 의도치 않게 그녀의 몸을 보게 됐다. “흠…….” 원치 않는 광경을, 그것도 변태적인 모습을 보고 있으니 선우진 입장에서는 곤란할 법도 했다. 하지만 그에게는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예달이 더 문제였다. 이 기현상을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까 하고 고민하고 있던 차였다. 발치 앞으로 예달이 사다리에 올라가 창틀 윗부분을 닦는 것이 보였다. “으앗!” ..

카테고리 없음 2025.09.20

[유예] 무죄증명

한가로운 날이었다. 어제는 접시를 깬 예달이었지만, 오늘은 아무것도 망가뜨리지 않았으니 좋은 날이기까지 했다. 그렇게 바닥을 쓸고 닦고 열심히 본분에 맞게 일하며 요리조리 시키는 대로 일하고 있을 때였다.갑자기 순사가 들이닥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예달은 자신과 가장 멀다고 생각했던 장소에 끌려가게 된다. 경찰서. 예달이 알고 있는 것과는 달리 그 시절 경찰서는 예달이 원래 살던 21세기와는 달리 그저 취객들과 많은 조폭으로 득시글거려서 품위 없는 분위기의 장소가 아니었다. 이 새끼, 저 새끼 하며 권력을 잃어버린 형사가 많은 곳도 아니었고……, 21 세기처럼 불구속수사가 기본인 곳도 당연히 아니었다. 발에 채이는 것은 남의 손톱이요, 발톱이거나, 때가 나쁠 때는 너저분한 핏덩이도 있을 때였으니까.“..

카테고리 없음 2025.09.20

[유예] 메이드는 도박판 제패의 꿈을 꾸는가

만우절 기념으로 풀었던 역할반전 썰 백업!적폐캐해 노답망상이 다수 함유되어 있습니다. 0언제나처럼 설거지하다가 접시 깨먹은 예달짱... 자연스럽게 예달이가 깨부순 접시 치워주는 도련님 보면서'와 도련님은 생활력 강해서 메이드일 해도 잘 하겠다'라는 망상 시작하는 김예달그 순간 펑! 하고 머릿속에 떠오르는... 메이드복을 입은 도련님의 모습(!) 김예달 도련님이 밖에서 열심히 마작치고 돈 한보따리 따들고 의기양양 돌아오면사이온지 메이드가 검은 치맛자락 휘날리면서 반갑게 맞아주는 거임그리고 배시시 웃으면서 이렇게 말하는 거지. "오늘도 수고하셨어요! 도련님. 뭐부터 하실래요? 밥, 목욕, 아니면..." 품속에서 주섬주섬 화투패를 꺼내 내밀면서"아니면 마작?" 헉 미친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정신차..

카테고리 없음 2025.09.20

[유예] 딸기는 포근해

4월. 벚꽃이 만개하는 계절. 생명이 개화하고 사랑 또한 개화하는 계절. 모두가 낭만을 즐기고 있는 가운데 선우진은 마루에 앉아 굉장히 따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한낮의 정오, 원래였으면 도박판에 있었을 그가 현재 저택에 있는 이유는 단 하나. 더 이상 선우진의 흥미를 자극하는 아찔하고 아슬한 도박판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사유로 선우진은 현재 마땅히 할 것이 없었다. 벚꽃은 휘날리고 햇살은 따스하고. 선우진은 따분했다. 물론 이 따분은 한 시진을 가지 못해 끝나고 말지만 말이다. 우당탕탕- 어디선가 무너지는 소리와 짧은 여자의 괴성. 다른 이라면 심장이 고동치며 놀랐을 것이 분명하지만 선우진은 익숙하다는 듯 옅게 웃고는 몸을 일으켰다. 소리의 출처로 향하는 발걸음이 선우진의 따분함을 조금씩 깨는 듯..

카테고리 없음 2025.09.20

[유예] 사랑도 집행유예가 되나요?

탈의마작 脱衣麻雀. 게임의 한 장르.기본은 마작 게임이나, 탈의(脫衣), 즉 옷을 벗기는 마작 게임. 일종의 야구권 법칙을 이용한다. 상대가 승리하는 경우, 패자는 옷을 한 꺼풀씩 벗는 것. 예달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떴다.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고,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눈을 감으며 시야가 천천히 좁아진다. 예달은 곱씹었다. 지금 오로지 슬립 원피스 하나만 몸에 걸친 저의 다리가 살짝 냉기가 돌자 정신이 들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예달은 당장이라도 현재 상황을 이해해야 했다. 아니, 이해해야만 했다. 그도 당연했다. 자신의 옷차림도 옷차림이지만 지금 고용주 ······. 그러니까 선우진이 곁에 앉아있었기 때문이다. 늘 입던 스리피스 정장은 어디로 간지 알아챌 틈도 없이 그저 셔츠와 바지 차림으로 ..

카테고리 없음 2025.09.20

ㅈㄷㅎㄱ ㄷㅇ

다음 날, 천독림에 갔을 때 독왕은 거처에 없었다.그를 찾아 주위 숲을 둘러보았다. 한참을 찾다 숲 깊은 곳에서 독왕을 찾았다.그는 바닥에 엎드린 채, 뱀과 눈싸움을 하고 있었다.독왕은 대화를 나눌 때는 잘 나누다가 한 번 뭔가에 몰입하면 옆에서 누가 죽어도 모를 사람이 되었다.그때 독왕이 뱀에게 말했다. "야, 요즘 너 컸다고 건방져졌어. 언제부터 내게 그 렇게 대가리를 빳빳하게 들고 대들었지?" 그러자 혀를 날름거리던 화왕칠보사가 고개를 숙였 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정말 말을 알아듣는 것처럼 보 였다. "너 그리고 내가 다른 건 몰라도 귀화초 열매는 함 부로 먹지 말라고 했지? 왜 말을 안 들어? 화주에 담겨봐야 정신 차릴래?"ㅡ독왕은 귀여웠다. 풋풋한 생김새 때문만은 아니다. 가령 이런 부분.독왕..

카테고리 없음 2025.07.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