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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예] 언-럭키 데이즈

푸딩챤 2025. 9. 20. 08:45

선우진은 근래 들어 새로운 고민이 생겼다. 고민이 발발한 것은 사흘 전이고, 고민의 원인이 생긴 지는 어언 열흘 가까이 지났다. 바로, 의도하지 않게 자꾸만 메이드의 속살을 보게 된다는 것. 무슨 저주에 걸리기라도 한 건지 보름 전 까지는 이만큼 자주 마주치지도 않던 예달과 한 시간에 몇 번이나 마주치는 것으로도 모자라 이제는 볼 때 마다 의도치 않게 그녀의 몸을 보게 됐다. 

 

“흠…….” 

원치 않는 광경을, 그것도 변태적인 모습을 보고 있으니 선우진 입장에서는 곤란할 법도 했다. 하지만 그에게는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예달이 더 문제였다. 

 

이 기현상을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까 하고 고민하고 있던 차였다. 발치 앞으로 예달이 사다리에 올라가 창틀 윗부분을 닦는 것이 보였다. 

“으앗!” 

갑작스레 틈새로 들어온 바람이 거세게 불어 치마가 뒤집혀 허벅지가 훤히 드러났다. 바람이 여간 고약한 게 아닌지라 아주 짧은 치마도 아닌데 속바지까지 훤히 보였다. 

그대로 창문을 닦던 손길을 멈추고 허겁지겁 치마 매무새를 정돈하느라 버둥거리고 있으니 이제는 사다리까지 말썽이었다. 자그마한 체구가 팔랑거리면서 허둥거리고, 이대로는 사다리에서 떨어질 위기였다. 선우진은 얼른 달려가 그녀를 받아냈는데……. 

 

“……이런.” 

조금 위치가 안 좋았다. 가슴에 손이 닿았다. 비단 가슴 아래를 감싼 게 아니라 그대로 팔로 가슴을 가로지른 나머지, 살짝 튀어나온 곡선이 뭉크러졌다. 사실 예달은 풍만한 가슴의 소유자가 아니었기에 선우진은 자신의 손이 닿은 곳이 어디인지도 처음에는 제대로 알아채지 못했다. 하지만 신체 위치상 가슴일 것도 같았고, 또한 이렇게 불운한 일만 연이어 일어나고 있으니 이번에도 혹시 가슴을 만지고 있는 건 아닌가 싶었다. 

그렇게 눈을 천천히 감았다가 뜨며 내려다보니 예달이 얼굴을 시뻘겋게 한 채 긴장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선우진이 얼른 손을 떼어냈다. 구해주려 한 것이지만 아무튼 동의 없이 가슴을 만지는 건 잘못된 행위였다. 

“미안하네, 예달 양.” 

“아, 아, 아니, 에요. 도련님.” 

예달은 얼른 주름이 진 치마 매무새를 허겁지겁 정리했다. 그리고 걸레에 먼지가 많네! 하고 기계적으로 중얼거리면서 걸레를 씻으러 갔다. 거의 도망에 가까운 행동이었다. 

 

아무리 봐도 며칠째 이어지는 이 불운한 흐름에, 저 메이드는 꽤나 동요하고 있는 것 같다. 선우진은 조치를 취할 방법은 따로 없으니 일단 자신이 예달을 최대한 피해다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사실 선우진 본인은 개의치 않았으나 예달은 생각보다 매우 말랑말랑한 정신머리의 소유자였으므로. 오죽하면 고용인이 되고 난 첫날 우락부락한 남자들로 가득한 집안을 보곤 너무 긴장해서 접시를 연이어 두 개나 깨뜨렸으니 말이다. 선우진은 그녀를 위해 기꺼이 맞춰 주기로 했다. 

 

* * * 

 

그렇게 성공적으로 사흘을 또 피해다녔다. 그 사이에는 별일이 없었다. 잠시 커피를 마시러 나왔는데-본래는 커피를 가져다주는 것도 예달이 할 일이지만 피해 다니면서 그런 명령도 줄였다-하필 예달이 몰래 구석에서 메이드복 셔츠의 단추를 두어 개 풀고 손바람을 부치고 있을 때 눈이 마주쳤다. 자그마하게 붙어있는 살덩이의 사이, 즉 가슴골이 보이지도 않아 사실 민망하진 않았지만 예달은 몹시도 당황했는지 도련님, 하며 허겁지겁 또 옷을 여몄다. 안 그래도 더워서 손부채질을 하고 있었을 텐데 더 빨개졌다. 

 

“그래요, 예달 양. 무슨 일이죠?” 

선우진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니, 에요! 좋은 아침이에요, 도련님.” 

“예달 양도요.” 

그리고 자연스럽게 부엌에서 마실 것을 한 잔 따라서 제 방으로 가지고 갔다. 그게 그날 아침에 일어난 일이었다. 

 

‘역시 눈에 띄니 불상사가 발생하는군.’ 

선우진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커피를 마실 생각이었지만 그녀가 등지고 있는 찬장에 커피와 차가 들어 있어 강제로 미지근한 물을 마시게 된 선우진이었다. 그래도 오늘은 외부 일정이 있으니 예달을 민망하게 할 일은 없겠거니 싶었다. 

그는 예정보다 조금 더 늦은 시간에 귀가했다. 예달에게는 부러 귀가 시간을 알리지 않았다. 혹시나 맞이를 하며 또 마주칠까 싶었기 때문이다. 순식간에 예달을 피해야 할 사람 취급하게 된 건 아주 조금 미안하지만 이건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깔끔하고 예쁘게 정돈된 구두를 신고 피곤함이 묻어 있는 발걸음을 옮겼다. 카펫이 깔려 있어 구두 굽 소리도 거의 나지 않았다. 선우진은 손목 시계를 쳐다보느라 계단을 청소하고 있는 예달을 미처 발견하지 못했다. 그리고 예달은 깔끔하게, 완벽하게 일을 해내고 싶어 완전히 몰두했다. 

뿌듯한 감정을 담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이마의 땀을 닦던 순간이었다. 

쿠당탕! 

요란한 소리와 동시에 두 사람이 부딪혔다. 그리고 발을 헛디딘 예달이 선우진을 밀치며 그를 떨어뜨렸고, 예달 또한 함께 굴러서 떨어졌다. 다행히도 바닥과 계단에는 푹신하고 두꺼운 카펫이 깔려 있어 두 사람 다 다치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도 역시나 상황이 문제였다. 선우진은 예상하지 못한 급작스러운 일에 숨을 푹 내쉬었다. 자신도 예달도 제대로 눈을 뜨고 호흡하고 있으니 다친 곳은 없다. 문제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는 제 위에 엎어져 가슴을 짚고 찰싹 달라붙어 있는 예달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뺨을 시뻘겋게 붉히며 파르르 떨고 있었다. 너무 놀라서 어떻게 할 줄도 모르는 듯 손가락을 파들파들 떨더니, 이윽고 히끅! 하며 딸꾹질을 했다. 

 

“예달 양, 이젠 괜찮나요?” 

“네, 네. 도, 도련님. 히, 히읏!” 

딸꾹질이 또 나와서 억지로 참았다. 예달은 고개를 푹 숙이며 겨우 제 마음을 진정시켰다. 그러면서 선우진의 가슴을 짚은 손에 힘을 주었다. 아무리 봐도 점점 이상야릇해지는 자세에 선우진은 눈을 끔뻑였다. 

“그래요, 이제 괜찮으면…… 좀 나와줬으면 하는데.” 

가슴이 간지러워서. 선우진이 엷게 웃으며 농담했다. 그 모습에 예달은 또 화들짝 놀라 펄쩍 뛰어올랐다. 

“죄송, 죄송해요. 도련님. 진짜, 오늘따라, 아니, 요즘 왜 이러지……!” 

허겁지겁 선우진의 몸에서 벗어나려고 하는데 또 발을 헛디뎌서 아까와는 또 다른 자세로 몸을 겹치게 됐다. 선우진의 골반을 두 허벅지 사이에 둔 자세였다. 너무 천방지축이라 그런지 이번에는 정말 입술을 포갤 뻔했다. 놀라서 흡, 하고 입술을 앙다물고 눈을 꽉 감았다. 

그 순간이었다. 미적지근한 손바닥이 입술과 볼을 감쌌다. 선우진 특유의 시원한 향기가 스르르 풍겨져 나왔다. 예달은 눈을 조금씩 뜨며 상황을 파악했다. 예상대로 선우진이 커다란 손으로 제 입을 꽉 막고 있었다. 고개를 뺄 수 없어서, 그녀는 숨을 크게 들이켰다.

 

“우, 우으.” 

울먹거리는 그녀는 이걸 정말로 어떡하면 좋냐고 눈으로 물었다. 이미 과거로 돌아온 몸이지만 예달은 한 번 더 과거로 돌아가고 싶었다. 아니면, 아예 미래로 가든지. 이렇게 사고만 연방 쳐 대는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지햐, 정할루 죄호해요. 도련힘.” 

혹시나 입을 움직여서 손바닥을 핥을까 예달이 최대한 입술을 모으며 말했다. 그렇게 죄송한 마음을 담아 그렁그렁한 눈동자로 말하자 선우진이 상체를 들어올렸다. 그리고 손으로 가려지지 않은 뺨에 입술을 맞추었다. 촉, 가벼이 닿았다가 떨어졌다. 몹시 부드러운 살결이 서로 맞닿자 전기가 일 듯 예달의 어깨도 움찔댔다. 

뺨이 얼마나 뜨겁게 달아올라 있는지 하마터면 델 뻔했다고 농을 치려다가, 선우진은 그냥 씩 웃으며 말했다. 그에게 메이드를 울리는 악취미는 없었다. 

 

“죄송할 게 무엇이 있겠나, 우리 사이에.” 

나긋나긋한 웃음과 동시에 그는 느긋하게 일어났다. 예달을 일으켜준 뒤에는, 다음에는 다른 놈과 뒹굴지 않도록 조심하라며 떠나갔다. 예달은 그 기묘한 언사에 어떤 반응을 보이면 좋을지 몰라 그냥 또 사과를 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