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로운 날이었다. 어제는 접시를 깬 예달이었지만, 오늘은 아무것도 망가뜨리지 않았으니 좋은 날이기까지 했다. 그렇게 바닥을 쓸고 닦고 열심히 본분에 맞게 일하며 요리조리 시키는 대로 일하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순사가 들이닥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예달은 자신과 가장 멀다고 생각했던 장소에 끌려가게 된다.
경찰서. 예달이 알고 있는 것과는 달리 그 시절 경찰서는 예달이 원래 살던 21세기와는 달리 그저 취객들과 많은 조폭으로 득시글거려서 품위 없는 분위기의 장소가 아니었다. 이 새끼, 저 새끼 하며 권력을 잃어버린 형사가 많은 곳도 아니었고……, 21 세기처럼 불구속수사가 기본인 곳도 당연히 아니었다. 발에 채이는 것은 남의 손톱이요, 발톱이거나, 때가 나쁠 때는 너저분한 핏덩이도 있을 때였으니까.
“며칠 전 저택 근처 숲에서 시체가 세 구나 나왔다는 사건, 알고 있나?”
“네, 알, 알고 있는데요…….”
일을 하면서 주변에 변사체가 발견되었다는 말은 들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여기는 정말로 대한민국이 아니구나’하며 무서움을 가득 안고, 괜히 빗자루도 두 손으로 꼭 쥐고 살금살금 다녔더랬다.
“다 추궁해봤지만, 대부분 다 자신의 행적을 제대로 밝히더군. 그리고 그 중에서 한 놈이 당신이 그 시간에 딱 혼자 있었다는 걸 말했어.”
“네……?”
이 말인 즉슨 범인으로 몰리고 있다는 것 아닌가. 예달은 화들짝 놀라 주변 눈치부터 봤다. 말도 안 됐다. 어벙하게 눈을 둥그렇게 뜨고 있으니 순사는 이 여자가 무슨 귀염이나 떨고 있나 싶어 더욱 험악한 얼굴을 했다. 예달은 진심으로 황당한 것인데.
“알리바이를 증명해 줄 자가 없나? 그 사건은 총독께서 예의주시하고 계신 사건이야. 사이온지 선생저 주변에서만 벌써 세 구 째라고! 알리바이를 대!”
순사는 알아들으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모를 정도로 거칠게 시간과 경위를 말했다. 혼란스러운 가운데 시커먼 남자가 겁까지 주고 있으니 머리가 더 안 돌아갔다. 예달은 자신의 메이드복 에이프런을 만지작거렸다. 손바닥에 땀이 몽글몽글 맺힐 듯 습기가 찼다.
“알, 알리바이라니. 그런 거……. 그, 그때는.”
혼, 자 있었는데……. 예달이 얼굴을 시뻘겋게 하고 울먹거렸다. 심지어 그냥 도난 사건도 아니고 살인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을 당하다니. 이리저리 말을 해도 알리바이를 만들 수가 없었다. 정말로 혼자 있었다. 도련님의 방은 이미 닦았기에 아쉬운 마음을 담아, 나머지 방을 열심히 쓱싹쓱싹 닦고 있던 자신이 무슨 살인이란 말인가.
“제가, 제가 한 게 아니에요. 애초에 저는 이, 일이 많아서 바깥으로 못 나가고, 안 나간다고요! 변사체가 나왔다고 한들 바깥에 못 나가는데 어떻게……!”
실로 예달은 자유롭게 외출을 하고 싶지도, 할 수도 없었다. 무서워서 나갈 수가 없었으니까. 자유롭게 외출은 가능하지만 바깥에는 무서운 사람-예를 들면 이 순사 같은 남자-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거의 반강제로 칩거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바깥에서 변사체가 생겼다고 자신을 의심하다니…… 예달 입장에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참고로 일이 많다는 건 반쯤 핑계였다. 무서워서 외출을 하지 않는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알리바이! 알리바이가 필요하다고. 그런 건 네 변명에 불과하잖아! 그리고 갑자기 일이 많아서 화가 난 나머지 유리창을 깨고 나갔을 수도 있는 거 아니야?!”
“그런…….”
유리창을 누가 그렇게 함부로 깨요. 말도 안 된다. 예달은 정말로 눈물이 터질 것 같았다. 진짜 인생이 망한 건가. 그렇게 발발 떨고 있으니 하늘에서 더한 천벌이 내려왔다.
“알리바이를 증명할 게 없으면 일단 제 1용의자인 상황이니, 넌 투옥이야. 총독께서 직접 지시하신 사안이다. 즉결권을 행사하겠어.”
“네?!”
말도 안 돼. 부조리했다. 예달이 눈물을 질질 흘리면서 안 돼요, 잠시만요, 하며 웅얼거리고 있었다. 그러니 순사가 얼른 예달의 팔뚝을 마음대로 붙잡았다. 가녀린 몸에 비해 드센 힘에 놀라 악, 하고 소리를 치니 순사가 에이 씨! 하며 또 성질을 냈다. 과연 그 시절 매국노답게 정말 나쁜 새끼라고 생각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을 때였다.
“으응, 예달 양……. 예달 양, 있나?”
어디서 반쯤 맛이 간 목소리가 들렸다. 낮고 익숙한 목소리였다. 자주 들을 일은 없지만 뇌리에 정확하게 박혀 있는 음성. 예달은 눈물을 뚝 그치고 고개를 들었다. 몸도 덩달아 늘어져 있던 것이 바짝 섰다. 순사도 갑자기 들려오는 남성의 목소리에 고개를 휙 돌렸다.
“후, 예달 양. 여기 있었어. 왜 마음대로 나가고 그래요……. 응?”
“도, 도련님.”
그가 평소보다 느끼한 목소리로 말했다. 술에 취한 것 같았다. 그런데 술 냄새는 심하지 않아서 의아하게 생각했다. 뺨은 조금 붉은 것 같은데……. 사이온지는 고개를 빙그르르 기울이며 주변이 어디인지 그제야 깨달은 듯 아, 하며 자신의 재킷의 매무새를 가다듬었다. 헐렁하기 짝이 없는 행동이라 저 안에서는 쯧, 하고 혀를 차는 소리도 들렸다. 그 소리에 사이온지의 눈길이 아주 잠깐 날카로워졌다.
“……사이온지 선생 아니십니까.”
“어으으, 미츠이 씨? 무슨 일이요.”
예달은 사이온지가 주머니에 손을 넣고 푸스스 웃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아름답게 두 눈이 접히더니 익숙하다는 듯 예달에게 다가와 그녀의 어깨를 폭 잡았다. 은근히 힘을 주어 탁 이끌자 미츠이 순사도 무슨 수를 쓰지 못하고 내주고 말았다. 귀족 앞인 이상 그도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
미츠이 순사는 사건을 설명했다. 잘 알지 않느냐는 말로 포문을 열더니 결론적으로는 알리바이가 없는 이 메이드를 투옥할 예정이라는 것으로 끝맺음했다. 짝다리를 짚고 예달을 품에 낀 채 가만히 들으며 고개를 묵직하고 느릿하게 끄덕거리던 사이온지는, 천천히 손을 미끄러뜨렸다. 어깨에서 날개뼈, 그리고 안 그래도 자그마한 허리를 커다란 손으로 쏙 안고는 고개를 살포시 기울였다. 이윽고 음- 하고 괜히 뜸을 들이더니 입을 열었다.
“내가 증인이오.”
“예? 아니, 그럼…… 이, 이 여자는 증인이 없다고 했습니다!”
미츠이가 손가락으로 예달을 가리켰다. 손가락으로 가리켜진 예달은 정작 사이온지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것인가 싶어 눈을 휘둥그레 떴다. 안 그래도 큰 눈이 더 커지면서 속눈썹이 활짝 들렸다.
“……예달 양도 참.”
하긴, 그럴 만도 하지. 사이온지가 홀로 중얼거렸다. 예달은 이 잘생긴 도련님이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지 감이 오지 않아서, 그냥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자신의 허리에 감긴 굳건한 손가락이 따뜻했다. 의지가 되는 느낌에 긴장이 쏙 풀렸다. 옆을 살짝 바라보며 주인님, 하며 불안에 찬 목소리로 아주 작게 속닥거리자 순사의 눈이 거칠어졌다. 그 모습에 또 겁을 먹어 히극, 예달이 입을 꼭 다물었다.
“예달 양과 그때, 난 같이 있었거든. 그래, 같은 침대. 좀…… 뜨거웠지. 야했고.”
“…….”
“아무래도 그런 건 말하기가 어렵지 않소. 원래 여인들은 이런 걸 자기 입으로 말하기를 부끄러워하지 않나?”
“도, 도련님!”
예달은 화들짝 놀라 그 자리에서 펄쩍 뛸 뻔했다. 얼굴도 새빨갛게 달아올라서는 귀한 천도복숭아처럼 금세 터질 것 같은 모양새였다. 머리칼보다 더 꽃 같은 뺨에는 물이 들어서 도저히 빠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어쩔 줄 몰라하는 예달과는 달리, 가만히 있으라는 듯 사이온지의 손길이 옆구리를 더욱 옥죄었다.
“꼬치꼬치 캐묻는 미츠이 순사의 표정도 무섭고 말이야.”
사이온지가 푸흐흐 웃음을 터뜨리면서 미츠이를 놀렸다. 그러고 있자 미츠이 순사는 약간 짜증이 난 얼굴로 미간을 좁히더니 예달과 사이온지를 번갈아 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미츠이의 눈에 예달과 사이온지는 그럴 만한 사이가 아닌 듯했다. 그야, 사이온지 선생이 이때까지 끼고 다닌 여자들은 대부분 다 상당한 미인이었으니까. 키도 크고 대부분 몸매도 육감적인 사람이 많았다. 인종을 가릴 것 없이.
그런데 예달은 그렇지 못했다. 외모와 몸매 모두 다 평범했다. 조금 말랐다는 것 정도가 특이한 점이겠지만 그거 하나만으로 저 사이온지 선생이 예달을……? 순사가 눈을 가늘게 떴다. 고개를 저었다.
“선생께서 증인해 주시니 감사하지만, 솔직히…… 선생의 고용인이기에 김예달 양을 감싸는 것으로밖에는 안 보입니다. 아무리 사이온지 선생님의 말씀이어도 이번 증언은 신빙성이 떨어집니다.”
“날 의심하는 거요?”
사이온지가 미간을 푹 일그러뜨렸다. 그리고 예달을 안고 있던 팔을 떼내고 미츠이에게 달라붙었다. 분노로 얼룩진 얼굴의 그가 순사의 멱살을 잡았다. 그러고는 그를 벽으로 몰아붙였다. 쾅! 하는 소리와 동시에 그가 얕게 술 냄새를 풍기며 말했다.
“이렇게 나를 무작정 의심하고 들면 나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소. 심지어 신빙성이 떨어져? 정말 모욕적이군. 미츠이 순사, 자네가 내 밤자리까지 간섭하려고 하는 건가?”
“선생, 이, 이거 잠시……! 윽!”
“그렇게 나오겠다면, 그래. 바로 증거를 보여주겠네.”
미츠이의 멱살을 확 놓아버린 뒤 사이온지는 뚜벅뚜벅 발걸음을 옮겨 다시 예달이 있는 자리로 향했다. 그리고 예달의 손목을 잡고, 등에 자신의 손을 받친 뒤 그녀를 경찰서의 책상에다 눕혀버렸다. 예달이 갑작스레 주저앉듯 등을 대면서 휘날리는 서류가 팔랑거렸다. 다른 순사들과 안에 있던 조선인들도 놀라 웅성거렸다.
“잠시, 실례 좀 하지.”
사이온지 선생이 도대체 무얼 하려는 것인가 싶어 눈을 휘둥그레 뜨던 사람들은 이윽고 일어나는 진한 타액 소리에 입을 꽉 다물었다. 애써 외면하려 하던 사람들은 귓불을 붉힌 채 다시 자리에 앉았다.
예달은 입술에 닿는 제 도련님의 입술 감촉에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이제는 모르겠다 싶어 그대로 눈을 감아버렸다. 통통하게 들어오는 혀가 놀랍도록 부드럽고 뜨거웠다. 이렇게 잘생긴 사람과 이런 공공장소에서 키스를 해도 되는 건가 싶지만, 제 도련님 생각은 언제나 따라잡을 수 없었으니 어쩔 수 없다.
그렇게 예달의 발목이 아찔하게 사이온지의 어깨에 올라가고, 취기에 젖어 눈동자조차 흔들리는 사이온지는 자신의 허리춤에 손을 댔다. 그대로 바지를 벗을 듯한 모양새였다. 그에 기겁한 미츠이가 선생! 하고 고함을 질렀다. 아- 하고 잠시 김이 샌 듯, 아니면 짜증이 난 듯한 사이온지가 탄식했다. 행위가 멈추었다. 미츠이는 앞머리도 제대로 간수하지 못하고 헐레벌떡 뛰어왔다.
“알, 알겠습니다! 알리바이는 모두 입증되었습니다. 제가 선생의 의중을 의심하여 죄송합니다. 그, 그러니, 여기서 이러시지 마시고 얼른 나가시지요. 많이 취하신 것 같은데.”
나중에 한 번 더 여쭙겠습니다. 미츠이는 질색하는 얼굴을 참지 못하고 그냥 쫓아내버렸다. 사이온지는 왜 그러나, 미츠이 순사, 미츠이, 미츠이- 하며 또 술에 전 취객처럼 중얼거렸다. 그러고는 덩그러니 골목에 예달과 함께 나란히 섰다.
주변을 둘러보자 사람이라고는 몇 없었다. 몇 걸음 걷고서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원래대로 정리하고, 옷매무새도 가다듬었다. 이제는 연기를 할 필요가 없었다. 사이온지의 눈동자가 순식간에 멀쩡하게 돌아왔다. 왠지 맛이 간 것처럼 살짝 풀려 있던 동공도 선명해졌다. 평소의 총명하지만 의중을 알 수 없는 투명한 눈동자였다. 예달은 놀람을 억지로 감추며 자신의 도련님의 발자국을 총총 따라갔다.
“아……, 억지로 입 맞춰서 미안해요. 예달 양.”
옆을 돌아본 사이온지가 엷게 웃으며 사과했다. 예달은 여전히 입안에 남아 있는 감촉이 낯설고 어려워서 어쩔 줄 모르다가, 그냥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사이온지 도련님. 알리바이를 대주셔서 감사해요.”
그렇게 평소의 분위기로 돌아와 몇 걸음쯤 더 걸었을 때였다. 예달이 조심스레 물었다.
“그런데……, 도련님.”
“음?”
“왜 거기서…… 바, 바지를 벗으려고 하셨나요.”
“그쪽 치마를 벗길 수는 없지 않은가.”
그래서 내가 벗으려고 했지. 사이온지가 싱긋 웃으면서 예달의 어깨를 살포시 안았다. 그러고는 포상 삼아 맛있는 것을 사 주겠다고 했다. 여전히 의뭉스러운 웃음이 가득했다. 가까이서 천리를 내다볼 듯한 투명한 눈동자는 여전히 예달도 꿰뚫어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