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ㅈㄷㅎㄱ ㄷㅇ

푸딩챤 2025. 7. 12. 00:27



다음 날, 천독림에 갔을 때 독왕은 거처에 없었다.
그를 찾아 주위 숲을 둘러보았다. 한참을 찾다 숲 깊은 곳에서 독왕을 찾았다.
그는 바닥에 엎드린 채, 뱀과 눈싸움을 하고 있었다.

독왕은 대화를 나눌 때는 잘 나누다가 한 번 뭔가에 몰입하면 옆에서 누가 죽어도 모를 사람이 되었다.

그때 독왕이 뱀에게 말했다.
"야, 요즘 너 컸다고 건방져졌어. 언제부터 내게 그 렇게 대가리를 빳빳하게 들고 대들었지?"
그러자 혀를 날름거리던 화왕칠보사가 고개를 숙였 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정말 말을 알아듣는 것처럼 보 였다.
"너 그리고 내가 다른 건 몰라도 귀화초 열매는 함 부로 먹지 말라고 했지? 왜 말을 안 들어? 화주에 담겨봐야 정신 차릴래?"



독왕은 귀여웠다. 풋풋한 생김새 때문만은 아니다. 가령 이런 부분.
독왕은 허리에 열두 개의 주머니를 차고 있는데, 그 주머니마다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십이지신을 나타내는 열두 마리 동물인데, 어린아이들의 옷에 그려질 법한 화려하고 귀여운 화풍의 의인화된 그림이었다.

처음에는 무심코 지나쳤는데, 지금 보니 알 수 있었다.
“이거 직접 고르신 거죠?”
“내가 그린 거다.”
나는 깜짝 놀랐다. 이걸 다 직접 그린 것이라고?
“세상에 누구도 모를 겁니다. 이렇게 귀여운 주머니에 독왕의 극독이 들어있을 줄은.”

“어느 주머니에 든 독이 제일 무서운 독입니까? 설마 저 귀여운 토끼 주머니 속은 아니겠지요?”
“한 번 확인해 볼까?”
그가 토끼 주머니에 손을 넣으려 했다.
“사양하겠습니다!”
내가 손사래를 치며 후다닥 뒤로 물러났다. 그 모습에 독왕이 웃음을 짓다가 이내 정색했다. 나를 보고 처음으로 활짝 웃은 것이다. 웃어 놓고 자신도 놀란 모양이다. 나는 그 모든 모습을 보고도 못 본 척해주었다.



독왕은 대화를 나눌 때는 잘 나누다가 한 번 뭔가에 몰입하면 옆에서 누가 죽어도 모를 사람이 되었다.
-죄송합니다. 이런 고초를 겪게 해드려서요.
-괜찮다. 이런 때 아니면 언제 이런 경험을 해보겠나? 나는 신경 쓰지 마라.
정말 독왕은 대수롭지 않은 듯 말했다. 어떻게 보면 정말 이런 일을 당하는 걸 싫어할 것 같은 사람인데, 지금 저 담담한 얼굴을 보면 어떤 마존보다 이런 일을 잘 겪어낼 것으로 보이기도 했다.



진독거사가 독왕을 쳐다보며 말했다.
“널 보면 왜 이렇게 기분이 나쁘지?”
그 역시 사도의 절대고수. 독왕과의 만남에서 어떤 불길한 운명을 느낀 모양이다.
진독거사가 손가락으로 독왕의 턱을 기분 나쁘게 위로 쳐들었다.
“이상하게 네 눈빛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지금 이 순간에도 독왕은 전혀 겁을 먹은 표정이 아니었다.
독왕님, 겁먹은 표정을 지으세요! 라고 전음을 보낸들 평생 안 짓던 표정이 지어질 리 없다. 그것도 이미 기분이 나쁠 대로 나빠진 상황에서.



―오히려 참으실까 봐 그랬습니다.
―!
독왕은 깜짝 놀란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참으실까 봐요. 그래서 뺨도 맞고, 놈에게 수모를 당해도 참으실까 봐요. 독왕님은 아마 우리 계획을 위해 참으셨을 겁니다.
독왕의 그 맑고 큰 눈이 더욱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