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가신 세상은 포커 카드처럼 간단히 넘겨버리고 작은 분홍에 대해서 생각하자 물렁한 납작 복숭아와 크림치즈필링이 올라간 타르트 색색의 과자가 꽂힌 여름에 난 제철 무화과 파르페 겨울에 난 생딸기 같은
당신의 새빨간 혀가 훑은 아릿하게 달기만 한 디저트 금방 녹아버려도 메인 디쉬가 아니더라도 태어난 역할을 다하고 있어서 제법 괜찮지?
저 먼 곳을 떠돌래 은밀히 불 켜진 경성의 다방과 딸기나무의 열매처럼 빽빽이 늘어선 서울의 카페를 맴돈다 같은 장소에 위치한 다른 곳에 똑같은 발자국을 남길 수 있어 길이 막힐 때면 없어져버리는 조그마한 것들과 사랑에 빠진다 다이아몬드나 금화 같은 영원해서 비싼 것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아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튤립 아래 당신을 심고
꽃이 피어나면 아무것도 아닌 세상에 날개를 달아준다 뒤도 안돌아보는 희망찬 날갯짓에는 섭섭해하지 않아야지 동시에 존재하는 옛날과 지금에 대해 생각하다가 그 순간의 박동을 영영 당신에게 밀어내버리고
새로운 길에서는
휩쓸려간 당신을 심장의 뿌리로 움켜잡아
작은 분홍을 다시 키우는 거야
우리가 손을 잡으면
우수수 올라가는 별빛이 있다
끝도 없이 반짝이는 연극 같은 세상에서는
봉숭아색 커튼으로 온몸을 물들이기
김예달이 직접 만들었다는 복숭아 케이크는 모양부터 이상했다. 선우진이 즐기던 고급 화과자 같은 디저트와는 180도 다른 모양새였다. 장인의 손놀림으로 빚은 소담한 모양 같은 건 당연히 없었다.척 보기에도 초보가 만든 생크림 모양조차 울퉁불퉁 짜진 케이크였다. 데코레이션이라는 데코레이션은 전부 넣은 조악한 케이크였다. 선우진은 굳이 따지자면, 담백한 맛의 파운드 케이크를 좋아했다. 저런, 소학교 학생이나 먹을 듯한 유치한 케이크가 아닌.
“도려니임…….”
저, 열심히 구웠어요! 를 온몸으로 표현하는 듯 김예달은 곳곳에 생크림과, 밀가루를 묻히고 있었다. 케이크를 들고 서재 앞에 서 있던 김예달은 잠시 고개를 수그리고 고민했다. 도련님이 안 먹으면, 혼자 먹지 뭐! 김예달은 잠시의 고민을 마치고 티테이블을 향하여 발을 재게 놀렸다. 선우진이 좋아하는 차 종류도 가져왔다. 케이크를 열심히 구웠지만, 사실 도련님이 마음에 들어하지 않을 걸 알고 있을지도. 그럼에도, 김예달은 한 번쯤은 선우진에게 가장 잘 만드는 음식을 주고 싶었다. 서울에서는 구할 수 없던 고급 밀가루와, 프랑스산 생 버터, 매일 배달오는 신선한 우유 크림. 그리고, 제철 납작 복숭아를 사용한 케이크였다. 군데군데 스프링클도 뿌렸다. 좋아하는 마음을 담아 몰래 케이크를 하트 모양으로 만들었다.
“앉아요. 예달 양.”
선우진은 긴 다리를 곧게 움직이며 원목 책상에서 일어나 한켠에 마련된 티테이블 의자를 빼주었다. 옷이 더럽네요. 죄송해요, 도련님...빨리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말을 마치고 베시시 웃는 김예달을 향해 선우진이 유우자적 웃었다. 각자의 찻잔을 채우고 김예달은 케이크를 와구와구 먹고, 선우진은 차를 느릿하게 마셨다.
김예달이 종알거리는 소리는 가끔은 대꾸하고, 반은 대충 넘기며 노랫소리 삼아 차를 마시던 선우진은 김예달의 케이크가 반쯤 없어진 걸 발견했다. 어느새 반이나 먹었는지 빵빵해진 볼로 입에는 생크림을 묻히고... 재빠르게 먹는 것이 꼭 토끼 같았다. 어릴 적 토끼를 키웠다면, 저렇게 자랐을까. 되도 않는 생각을 하다가 선우진은 손을 움직여 카드를 치듯, 우아한 손놀림으로 케이크를 한 입 먹는다. 생긴 것과 다르게 달지 않았다. 제법 맛있었다. 선우진은 김예달의 입에 묻은 크림을 닦아주며, 김예달도 잘하는 게 있다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