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년 스물 셋, 뭇 사람들이 보았을 때 혼기에 적합한 나이였다. 예달의 부모님 또한 그렇다고 생각했는지 이제는 제대로 아이를 꾸며서 맞선 자리에 내보내기로 했고…… 그 결과 예달은 집사로부터 예절 교육을 다시 한 번 받게 되었다.
귀족 집안의 아가씨 신분이었으니 늘 교육을 받고 있었지만 실제로 실천하는 것은 교육과 동떨어진 웃음 소리나 걸음걸이였기에 정말로 제대로 된 엄격한 방식이 필요했다. 맞선을 나가게 되는 것은 가문을 대표하는 자리이기도 하니 더더욱. 예달은 사실 긴장도 되고 맞선도 예절 교육도 꼭 해야만 하는 걸까 고민했지만 부모님이 말씀하시는 대로 하기로 했다.
그리하여 집사인 사이온지는 예달의 부모님이 부재중인 상황에 교육을 맡게 되어 막중한 책임이 따랐다. 그렇게 정식으로 명령을 받은 날 아침을 먹을 때부터 예달을 교육하기 시작했다.
“다시 잡으셔야지요.”
“알았어…….”
“지금은 그 나이프를 쓰면 안 됩니다, 아가씨.”
가정교사로서의 사이온지는 상당히 다정하지만 은근히 엄한 구석이 있었다. 사이온지의 그런 모습을 처음 본 예달은 어깨를 늘어뜨린 채로 있다가 다시 정신을 차리고 나이프를 들었다.
“으응. 다른 겁니다.”
“…….”
“다시 해 보시지요.”
평소라면 예의 없는 방식으로 30분 만에 끝났을 식사가 1시간 30분이나 걸렸다. 시간 상의 한계로 인해 예달은 거의 다 먹지도 못했고, 음식이 나갈 때쯤은 대부분 다 버려진 음식을 아까워했다.
“음식을 그렇게 애틋하게 바라보시는 건 안 된답니다.”
“미, 미안해. 유우야 군.”
식사 수업이 끝난 뒤에는 대화 시에 보여야 할 예의범절 수업이었다. 사이온지는 예의 그 다정한 미소를 예시로 보여주면서 예달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예달이 히이- 하고 굳은 얼굴을 내보였다. 정말로 최선을 다해 따라한 게 이거라니, 조금 안쓰러울 정도였다. 사이온지는 고개를 조심스레 저으면서 입꼬리를 조금만 더 내려보라 부탁했다.
“이, 이어헤……?”
“아가씨. 지금보다 조금만 더 입꼬리를…… 네, 그렇게. 좋습니다.”
이번에는 너무 내려가서 눈꼬리까지 서늘해졌다. 고개를 재차 저으니 예달이 눈치껏 열심히 입꼬리를 움직였다.
“이엇케?”
“너무 굳어 계십니다.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어깨가 꼭 목석이라도 된 듯한 모양새에 사이온지가 양해를 구한 뒤 어깨에 손을 올리고 톡톡 두드려 주었다. 그러자 힘이 조금 풀렸다. 다행히도 얼굴 근육도 풀려서 아까보다 훨씬 자연스러웠다.
사내와 대화하는 방법이라는 것도 있었다. 책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사내에게는 어떤 말을 하면 좋은지, 어떤 말을 하면 매력을 느끼는지 등의 이야기를 해 주고는 했다. 예달은 뭐가 뭔지, 왜 그런지, 꼭 그래야만 하는지…… 그냥, 유우야 군한테 하는 것처럼 결례만 끼치지 않으면 되는 것 아닌가 싶었다. 그렇지만 그게 아니니까 사이온지가 이렇게나 열심히 가르쳐 주는 거겠지.
예달은 오늘도 잘생긴 얼굴을 흘금거리며 다리를 달랑거리다가 일순 멈추었다. 이러면 산만해 보이니 안 된다고 방금 배웠다.
“아가씨, 사내들 앞에서는 말을 많이 하지 않으시는 게 좋습니다.”
“그래……? 왜?”
“너무 많은 빌미를 주면 경박하다는 인상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가? 그렇지만 말이 통하면 이야기하고 싶은데…… 지, 지금은 어때? 말 많아?”
예달은 조금 마땅치 않았다. 이런저런 고민이 깊어졌다. 생각지도 못한 일이 갑자기 닥치자 혼란스럽기도 했다. 그래서 사이온지를 붙잡고 어떻냐고 또 물어보았다. 오늘만 해도 ‘지금은 어때?’라는 말을 23번 정도 했다.
“마지막에 지금은 어떻냐고 말씀하시는 것만 빼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조금은 참으셔야 됩니다. 가문을 대표하는 자리니까요.”
“으응…….”
석연치 않은 눈치로 눈꼬리를 축 늘어뜨리자 안 그래도 살짝 늘어져 있는 눈꼬리가 더욱 처져서 나른하게 보이기까지 했다. 사이온지는 그런 예달을 향해서 ‘너무 시무룩하게 계시면 안 됩니다’ 하며 싱긋 웃어 주었다. 잘 하고 계시니 괜찮을 거라고 말하던 사이온지는, 그렇게 해도 여전히 피곤에 절어 지쳐 보이는 예달을 바라보다가 기분 전환을 하러 가자고 제안했다.
“어떻게?”
“맞선을 보러 갈 때 입을 옷을 사러 가는 겁니다. 어떠십니까?”
“좋아! 그러면, 올 때 디저트도 사 올까?”
평소의 아가씨 모습으로 명랑하게 대답했다. 사이온지는 기운이 돌아온 예달을 보면서 안도했다. 그리고 ‘좋습니다’ 하고 싱긋 웃어 보였다.
* * *
옷가게만 가는 게 아니라 메이크업 숍도 함께 가기로 했다. 화장이라고는 제대로 해 본 적이 없는 예달이었기에 처음에 들어갔을 때부터 이국적으로 확 풍겨 오는 향수 냄새가 조금 신기했다. 향수 냄새야 늘 맡았지만 루주나 메이크업 용품에 들어가는 화장품 냄새와는 조금 다르다고 해야 할까.
예달은 미용실에 온 것처럼 목 주변에 천을 두르고 멀뚱멀뚱 앉았다. 그러자 피부를 정돈해주기 시작한 미용사가 다가와 스펀지로 톡톡 피부 결을 정리했다. 금세 뽀얗게 달걀을 깐 듯 피부가 부드럽게 보였다. 원래는 주근깨도, 홍조도 두드러져서 약간 정돈되지 않은 느낌이 강했는데 말이다. 예달은 그런 게 신기하기도 하고 좋은 듯 배시시 웃었다. 그러다가도 사이온지의 눈치를 보면서 헤헤, 하고 웃던 것을 입술을 모아 살포시 입꼬리만 끌어올렸다. 이렇게 웃으면 안 된다고 했지…….
그렇게 하나 둘씩 화장을 진행할 때마다 미용사는 잘 모르는 예달에게 이것저것 가르쳐주고는 했다.
“아가씨, 이 파우더는 어떠세요? 뺨에 바르는 건데, 미제(美製)라서 고급스러운 상품이랍니다.”
“나한테 잘 어울릴까?”
“그럼요. 톡톡 바르면 티는 많이 안 나서 부담스럽지 않은데도 주근깨도 잘 가려 준답니다.”
“가려 준다구? 그러면…… 한 번만…….”
봉선화처럼 약간 주홍빛이 도는 분홍색 파우더였다. 뺨에 톡톡 올리자 예달의 원래 홍조와는 다르게 설렘으로 물든 소녀 같은 얼굴이 되었다. 아주 미인이 된 건 아니었지만 소녀답고 귀여운 분위기가 잔뜩 풍겼다.
그 다음으로는 아이라인과 아이섀도, 그리고 마지막으로 마스카라까지 더하고 나자 예달의 동그란 눈이 더욱 더 커졌다. 복숭앗빛으로 빛나는 얼굴을 거울 너머로 보자 정말로 이게 자신인지 신기한 마음에 예달이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마지막으로 눈썹을 정돈하고 입술에 부담스럽지 않게 옅은 색상의 루주를 바르고 나자 화장이 완성되었다. 뽀얗고 동그란 얼굴에 톡톡 올라와 있는 봉숭아물이 사랑스러웠다.
사이온지도 그녀의 얼굴을 한 번 둘러보고서는 괜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이만하면 굉장히 만족스러운 결과물이었다. 처음으로 화장을 받아 본 얼굴인데도 들뜸이 없으니, 아가씨가 미인은 아닐지라도 피부는 정말로 보드랍고 예쁘다는 걸 느꼈다. 사이온지가 다정하게 웃음을 지어 보이자 예달이 새초롬하게 입꼬리만 올려 웃었다. 사이온지에게 배운 방식이었다.
“잘 하고 계십니다.”
사이온지가 부드러운 웃음을 보이면서 예달의 손을 잡고, 다음 행선지로 향했다. 테일러 숍이었다. 재단사가 직접 예달의 몸 사이즈를 재어 드레스를 맞추는 곳이었는데, 오늘은 본격적으로 맞선 때 입을 맞춤 옷도 한 벌 사고 하루 내내 고생한 예달에게 좋은 선물도 필요했으니 기성복도 한 벌 사기로 했다.
그 중에서도 사이온지가 골라 준 것은 하얀색 세일러 칼라가 있는 블라우스와 빨간색 치마였다. 세일러 칼라에는 잎 모양의 자수가 놓여 있어 상큼하고 발랄한 분위기를 자아냈고, 블라우스의 끝은 프릴로 장식되어 있어서 경쾌하지만 우아한 인상을 주었다. 한 번 바람에 살랑거릴 때마다 몸선에 맞게 달라붙는 새틴 재질이라 부드럽기도 했다. 하의인 붉은색 치마는 세 겹으로 되어 있어 가장 안에는 속치마, 그 다음으로는 짙은 와인 계열의 천이 덧대어져 있었고, 가장 바깥에는 분홍색이 섞여 있는 짙은 다홍색 플리츠 스커트가 나풀거렸다. 예달이 평소에 입는 것보다 훨씬 화려하고 또 예쁜 옷이었다. 과연 사이온지가 골랐다고 할 만큼 휘황한 매력이 있는 옷이었다.
옷을 사러 나오는 건 제법 오랜만이라, 기성복으로 준비된 옷을 입으러 들어가는 예달의 발걸음이 몹시도 경쾌했다. 저도 모르게 들떠서 종종걸음으로 자신을 재촉하는 모습이 사랑스럽게도 보였다. 사이온지는 엷게 웃으며 그녀를 기다렸고, 몇 분 지나지 않아 조심스럽게 나온 예달이 활짝 웃어 보였다.
“유우야 군, 어때? 괜찮아?”
평범한 소녀가 갑작스럽게 아주 아름다운 사람이 될 수는 없었지만, 지금의 예달은 생각하던 것보다 훨씬 앙증맞고 또 깜찍한 맛이 있었다. 조금 낮은 코도 끝이 둥글어서 부드러운 느낌이 났다. 앵두 같은 입술도 오늘따라 귀엽게 나불거리는 게 아기 새 같다는 생각을 들게도 했다. 사이온지를 향해 빙그르르 돌아 보이자 총 세 겹인 치마와 치마의 허리끈에 묶여 있는 리본, 그리고 블라우스의 소매까지 동시에 활짝 춤을 추었다. 꼭 나비가 꽃에 앉아 춤을 추는 듯한 모양새에 사이온지도 미소를 지었다.
“아름다우십니다, 아가씨.”
이렇게 예달을 데리고 와 예쁘게 꾸며 놓으니 뿌듯함이 밀려왔다. 예달이 기뻐서 방방 뛰는 모습을 보는 것도 당연히 기쁨의 한 요소였다. 기쁜 마음으로 바깥에 놓인 신발까지 까치발을 들고 신으러 향하자, 사이온지가 다가왔다. 그가 친히 팔을 뻗어서 싱긋 웃어 보이자 예달은 파우더로 물들어 있는 뺨을 달싹이며 앗, 하며 히히 웃었다. 저도 모르게 예전 웃음을 보였음에도 사이온지는 말하지 않고 그녀를 에스코트했다.
그리고 굽이 어느 정도 있는 붉은 구두를 신겼다. 무릎까지 올라오는 하얀색 레이스 스타킹이 신 발 안에 꼬옥 갇히자 더욱 잘 어울렸다. 사이온지는 자신의 안목이 틀리지 않았다고 확신하고, 예달은 그런 사이온지를 더욱 더 좋아하게 됐다. 유행하는 예쁜 드레스와 신발, 그리고 페도라까지. 예달은 오늘 세상에서 가장 예쁘게 꾸민 사람이 된 기분이었다.
배시시 웃으면서 사이온지와 함께 나란히 걸어가고 있을 때였다. 오늘 자신이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저도 모르게 웃고 있으니 누군가가 훼방을 놓기 시작했다.
“크으, 얼굴도 못생긴 게 돈 많은 부모 뒤에 둬서 잘생긴 새끼 하나 끼고 놀아서 좋겠다. 나도 돈 많은 집안 딸이나 할 걸 그랬어?”
술에 취한 사내들이 예달의 얼굴을 보면서 킬킬거렸다. 그러고는 그대로 지나가려고 했다. 저급한 발언에 놀라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오심을 느끼고 있던 예달이 우으, 하며 눈을 끔뻑였다. 그 자리 곁에 선 사이온지에게 미안하기도 했고 자신이 원망스럽기도 했다. 별로 예쁘지도 않은데 이렇게 꾸미고 다니는 게 역시 이상한 건가……? 예달은 자존감이 낮아져서는 울적한 생각을 했다. 그 순간이었다.
“아악!”
“아가씨를 그렇게 말씀하지 마십시오. 이 분은 당신이 그렇게 말씀해도 될 만한 분이 아닙니다.”
순식간에 다가가 무리에서 킬킬거리고 있던 놈의 등을 발로 차버렸다. 그러자 낮부터 술을 마신 남자는 커억, 하고 그대로 고꾸라지면서 사이온지에게 화를 내고 말았다.
“뭐, 뭐야!”
“그리고 저는 아가씨의 연인이 아니라 집사입니다.”
유우야 군! 화들짝 놀란 예달이 그를 따라가려고 했다. 그렇지만 팔에 제지를 당한 예달이 읏, 하며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다가가는 게 무섭기도 하고 싸움이 제대로 붙으면 유우야가 다칠까 고민하고 있던 차에 선우진이 놈에게서 멀어지면서 한마디를 말했다.
“끼고 노는 남자가 아니라, 아가씨께서 부리는 남자란 말입니다.”
사이온지가 미간을 확 찌그러뜨린 채 짐짓 엄하게 말하자 사내들은 한 대를 맞고 고꾸라져 기절하고 만 남자를 보고선 겁을 먹었는지, 그냥 부리나케 도망을 치고 말았다. 제각각 저급한 말을 또 줄줄 읊고 있었지만 이미 예달은 혼이 나가서 들려오지 않았다.
다시 돌아온 사이온지를 바라보던 예달은 멍하니 5초 동안 아무런 말도 없다가, 사이온지를 꼭 껴안으면서 훌쩍거렸다. 마음 구석이 찡하게 울려 퍼지는 게 이상했다. 자신의 편을 어디서든지 들어줄 것 같은 유우야 군이 너무 잘생겼고, 또 든든했다. 남자다운 모습이 너무 좋았다. 맞선 같은 건 보기도 싫을 정도로. 예달은 싱숭생숭한 마음을 애써 숨기고, 사이온지가 토닥거리는 손길을 받아들였다.